[미리보는 WOF 명강] 2. 이정동 서울대 교수
2019.10.13
대내외적인 복합 위기 속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오는 30일 개막하는 제13회 세계해양포럼(WOF)의 기조연설을 맡은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한 방안으로 ‘축적’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해 학계는 물론 경영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기술경제·혁신정책 전문가다. 세계해양포럼 기획위원회가 올해 초 일찌감치 포럼의 주제를 ‘해양의 축적’으로 선정하고, 만장일치로 이 교수를 기조연설자로 택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선진국 기술을 변형·발전시키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개념설계’로 ‘게임의 룰’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 교수의 문제의식은 한층 시급한 현실적 과제가 됐다.
최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사무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조선·해양은 우리 산업계에서 개념설계 역량이 가장 축적된 분야”라고 말했다. 개념설계를 하려면 해당 분야의 기술 고수, 시행착오를 통해 완제품으로 완성하는 ‘스케일업’, 그리고 시행착오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조 현장 이 세 가지가 필요한데, 조선·해양이야말로 이 조건에 최적화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 조선·해양은 수년째 혹독한 시련기를 보내고 있고, 이를 뒤집을 개념설계의 낭보는 들리지 않는다. 왜일까?
이 교수는 ‘고수의 역설’을 언급했다. “조선·해양 분야에서 기술 고수는 수없이 많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퇴적’된 사람이 적지 않다”면서 “핵심은 개념설계에 실제 도전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 데이터센터를 바다 속에 구축하는 실험을 2015년부터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를 언급했다. 이 교수는 “국내 기업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혼부터 낼 것”이라면서 “조선·해양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말하면 더 성능 좋고 더 경제적인 배를 생각하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기술 선도를 하려면 전혀 다른, 어찌 보면 엉뚱한 시도를 많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청업체 중심인 부산의 산업구조에서 개념설계 역량을 키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이에 이 교수는 “부산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조선·해양이라는 산업적 특성이 잡혀 있고, 지역 혁신 시스템이 잘 겹쳐져 있다”며 부산의 지정학적 경쟁력에 대해서도 호평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수는 세계해양포럼의 가능성에도 주목하면서 “이 자리를 잘 활용해 조선·해양 육성에 관한 빅픽처를 논의하는 그런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참고로 이 교수는 오는 30일 기조연설 내용에 대해 “사람 얘기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정동은 누구
1967년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자원공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모두 마쳤다.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며, 한국생산성학회 회장, 한국기업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공학 분야를 적절한 비유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유례를 찾기 힘든 고성장을 유지하며 전 세계적 벤치마킹 모델로 떠오르던 한국 경제의 현 위기 원인을 ‘축적의 부재’로 진단한 2015년 〈축적의 시간〉, 2018년 〈축적의 길〉이라는 두 저서는 오피니더 리더 그룹에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원문 :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10131926405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