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헌 해양수산부장
해양수산 관련 행사 부산서 잇따라 개최
국내 1위·세계 7위 항만 명성에도 불구
해양정책 결정권한 없는 ‘빛 좋은 개살구’
정권 무관심·항만당국의 견제로 하세월
코로나19가 잦아들면서 부산에서는 가을을 맞아 해양수산 관련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오는 25일부터 개최되는 ‘세계해양포럼’을 비롯해 국제그린해양플랜트 기술 콘퍼런스, FIATA(국제물류협회) 부산 세계총회, 국제해양폐기물 콘퍼런스, 원양축제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성황리에 열리기도 했다.
자칭 ‘해양수도’ 이며, 국내 압도적인 1위이자 세계 7위(컨테이너 물동량 기준)의 항만을 가졌으며, 해양수산 관련 공공기관·연구기관·단체 등의 70%가 모여있다보니 이 같은 행사들이 부산에 몰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클러스터 효과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같이 전 세계 어느 해양도시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을 인프라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해양자치권’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부산지역 시민단체에서 해양자치권을 말할 때 자주 드는 예가 ‘부산 앞바다에 유람선 하나 띄우지 못한다’는 것.
해양자치권 문제는 ‘부산의 해양특별시 지정’과도 맞닿아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세종특별자치시는 물론 5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6월부터 출범하는 강원특별자치도 등 지역특화 분권화 사례가 곳곳에서 나옴에도 부산의 해양특별시 지정 문제는 여전히 국회에 발의만 된 채 잠자고 있는 형편이다.
중국의 상하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등 전 세계 주요 해양도시가 해양자치권을 국가로부터 이양받아 글로벌 항만경쟁에서 신속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 같이 정부가 정부 주도의 해양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한다는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부산의 해양특별시 지정의 전 단계로 거론되는 ‘대통령 직속으로 범부처와 지자체 등을 아우르는 해양연안특별위원회 신설’ 문제도 하세월이다. 해양수산단체와 학계 등에서 기후변화, 해양영토 문제 등 나날이 복잡다단해지는 국내외 해양 현안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특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쉽게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부산시민의 강한 열망에도 부산이 해양특별시로 지정되지 못하고 해양자치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우선은 정권의 무관심을 꼽을 수 있다. 해양수산 분야가 다른 경제 분야에 비해 홀대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비서실장, 국무총리 등 권한을 가진 그 누구도 해양 분야와 밀접한 관련성이 없다. 부산 출신도 아니라 바다에 대해 잘 모르니 정부의 우선 순위 사업에 해양 분야가 들어가지 못한다.
단적인 예가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산하에 해수부 전담 비서관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경제부처 가운데 전담 비서관이 없는 곳은 해수부가 유일하다. 대통령 가까이서 해양과 부산의 중요성을 조언해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부산에서 아무리 ‘해양수도’를 외쳐봤자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허울좋은 메아리로 맴돌 뿐이다.
정권의 무관심보다 더 큰 걸림돌은 관련 정부 부처인 해양수산부의 견제다. 세계 7위의 부산항, 국내 최대 규모 위판장인 부산공동어시장, 해양수산 관련 공공기관·연구기관·학계 등이 집적돼 있는 부산이 해양수산 분야에서 가지는 비중은 국내에서 압도적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인프라는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부산이 해양특별시로 지정되거나 해양자치권을 부여받는다면, 상대적으로 중앙부처인 해수부의 정책적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다른 중앙부처에 비해 힘이 약한 해수부로서는 존립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결코 달가울 리 없다는 말이다.
부산시의 의지도 빈약하고 역량도 떨어진다. 정책 결정권이 없는 지자체의 한계도 분명하지만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오려는 어떠한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저 시민단체 등 여론에 기댈 뿐이다. 전문가가 없는 부산시 항만당국은 오히려 해양자치권 확보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정권의 결단이 필요하다. 지역균형발전·지방분권 차원에서 이뤄진 세종특별자치시, 제주특별자치도, 강원특별자치도처럼 부산도 해양특별시 지정의 당위성은 명확하다. 오히려 해양특별시 지정을 하지 않을 명분이 없다. 해양특별시 지정이 어렵다면, 해수부의 권한을 내려놓고 부산시에 해양자치권만이라도 대폭 이양하는 방안도 모색할 만하다.
방법이 어찌됐든, 해양자치라는 세계적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글로벌 해양경쟁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다를 잊은 국가는 세계 패권을 놓친다.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